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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자작시 - 밤(어둠)

by blank_in2 2019. 10. 1.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gongson_2/?hl=ko)




밤(어둠)


 밤을 사랑했다. 그리고 나는 밤을 좋아한다. 유난히 별 한 점 보이지 않는 날이면 하늘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맥주를 한 모금 삼켰다. 그리곤 내가 없는 밤을 노래했다. 그러다 가끔 주변을 서성이며 낑낑거리는 고양이와 마주치곤 하는데 마땅히 줄 것이 있을 리 없다. 괜히 주머니를 주섬거리다가 이내 구름을 그렸다. 하얀 구름이 날아 밤하늘을 덮어 주기를


 때는 종말을 맞이한 여름. 아마도 9월의 언저리쯤으로 기억하는데 왜냐하면 여름이라고 하기엔 애매하고, 그렇다고 가을이라 하기엔 또 더웠다. 날씨의 변덕 덕분인지 나는 가벼운 열병을 앓았다. 그런데 이게 마침 이별과 겹쳐서 ‘내가 그깟 작별 하나 때문에 아팠냐’는 생각에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가 밖으로 내색하게 되면 그게 정말로 사실이 될 것 같아서 담담한 척 굴었다.


 하지만 그게 좀처럼 쉽지는 않다. 우산으로 막을 수도 없이 비켜 내리는 비가 내 볼을 타고 내려와 옷을 적시고, 이내 몸까지 스며드니 담담한 척 굴었던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빗물에 마음마저 젖어버린 것이다. 축축한 내 마음을 꺼낼 수만 있다면 어디든 벗어놓고 말리고 싶다. 하지만 괜히 티 내는 것이 두려워 벗어놓을 수도, 상처받기 무서워 말릴 수도 없겠다. 그렇다면 남은 처방은 단명뿐.


 잠깐 일을 쉬기로 했다. 예전 같았으면 미래, 장래와 같은 별것도 아닌 걱정에 불안해하며 떨었을 나이지만 계속되는 불면에 일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오히려 습관처럼 불안을 조정해 오지 않았나 한다. 모처럼 자유가 주어지고 나니 나에게 주어진 것이라곤 몸뚱이를 함부로 휘두르고 썩힐 용기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게으름이 다였다.


 나태는 죄악이라고 하지만 죄악이란 괴로우면서 달콤한 법이다. 게으름은 정신을 좀먹는다고 경고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구애받지 않음이 얼마나 관능적인지 아는가. 오로지 향락만을 맛본다.


 유년기,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달을 동경하고 갈망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밝히는 그들이 얼마나 눈부셨으리라. 하지만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어둠이다. 그들과 나 사이의 심연은 메꾸어지지 않았다.


 내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빛이 나 또한 같이 밝혀줄 것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빛은 나를 더 깊고 진한 그림자에 가둘 것이다. 빛나는 존재들에 가려질 것이다. 그리곤 결국 보이지 않게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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