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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자작시 - 책방

by blank_in2 2019. 8. 27.

(마늘이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gongson_2/?hl=ko)







 책방에 가는 길엔 평소 같지 않게 설렘이 동반한다. 오로지 종이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분위기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자칫 그 독특한 기운에 취해버리면 주변 사람들도 아랑곳하지 않고 콧노래를 흥얼거릴지도 모른다. 살며시 미소를 띤 채 책 한 권을 골라 조심스럽게 첫 장을 넘길 때면 은은한 잉크 냄새가 내 코를 톡! 찌른다.


 아찔한 향기와 이 맛에 책을 끊지 못한다.


 와인이 숙성기간을 거치면서 맛과 향이 깊어지듯이, 책 또한 오래될수록 헌책만의 향기를 품는다. 주로 중고서적을 다루는 헌책방에 들어서면 오랫동안 쌓여있는 먼지와 습한 비 냄새가 아우러져 왜인지 모를 커피 향이 난다. 그리고 언제 적 책인지 가름할 수 없을 정도로 빛이 바래진 책 한 권을 보자면 수많은 사람의 손길마저 느껴지는 착각에 빠진다. 책에 잠겨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자각하지도 못할 쯤이면 이미 나는 책과 동화되어 저자와 함께 다른 세계를 누비는 중이다.


 너무 눈이 부시지 않으면서 적당한 바람이 부는 곳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을 때의 행복이란.


 오늘은 또 어떤 곳으로, 어떤 이야기를 볼 수 있을까. 이것도, 저것도 읽고 싶은 욕심에 어느 한 곳으로 손길이 정해지지 않는다. 좀처럼 책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인터넷과 SNS에서 화제가 된 책, 예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미뤄왔던 책,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끌리는 책 등 어느 한 권을 고르기엔 결정을 방해하는 유혹이 너무 많다.


 수많은 고심 끝에 비로소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부터 언제 그렇게 고민했냐는 듯이 모든 걸 잊은 채 책에 빠져든다. 이 책은 다른 책들 사이에서 자기가 선택받은 것에 기뻐했으려나? 도도한 척 각을 세우지마는 사람의 손길이 지나칠 때마다 까무러쳤으리라.


 상상해본다. 사람의 온기가 남아있지 않은 밤이면 잠들어 있던 책들이 깨어나는 것이다. 물론 꿈에서나 나올 법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주변은 메말라 가고 더는 책 속에 정서를 두지 않는다. 점점 끊어져 가는 발길에 그들은 사라져간다. 책방 속 책들은 살아 있지만 살아있지 못하다.


 책은 무수한 세계를 꿈꾸게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꿈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빼곡히 지어진 빌딩 속에서 나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책 속에서 꿈을 꾸기에는 사회가 녹록지 않다. 사랑하고 좋아하면서도, 가까이하지 못하고 꿈꾸지 못하는 나. 그 괴리에 빠져 평생을 살아갈 생각에 눈물이 흐른다.


 나를 지켰어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멀어져갔고, 나는 꿈을 잃어 외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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