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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자작시 - 서핑

by blank_in2 2019. 6. 6.



서 핑



코끝을 자극하는 바다 내음, 바위와 부딪치는 파도 소리 그리고 입안에 남은 묘한 쓴맛에 여기가 고향임을 자각했다. 이맘때쯤이면 몸과 마음이 지칠 때로 지쳐 휴식이 필요하다. 울퉁불퉁한 비포장지대를 건너 바다를 안고 몇 시간을 달리다 보면,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적막한 곳에 내 집이 있다.


 반겨주는 이는 따로 없다. 어쩌다 마주치는 마을 이장님을 제외하고는 가게 아주머니 정도가 전부다. 그럼에도 한 번씩 고향을 찾는데 그 이유는 바로 파도 때문이다. 부드러운 모래밭을 지나 보드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면 온 우주가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음을 느낀다. 조금 거창한가 싶은데 허벅지 위로 찰랑거리는 물결은 어느새 나와 하나가 되어 일몰의 광경에 녹아든다. 그대로 뒤로 누워 몸을 기댄다. 이게 언제부터 나만의 정기적 전례가 되었다.


“서핑은 파도가 주는 선물임이 분명하다.”


 먼바다에서 밀려온 파도의 끝자락을 몸으로 느낀다. 살얼음처럼 차갑고 찌릿하다. 그 파도와의 만남이 나를 더없이 자유롭게 만들어 준다. 다행히도 이곳은 중심지와 지리적으로도 멀고 수심 또한 들쭉날쭉 하기에 서핑장으로 찾는 이가 별로 없다. 그래서 나의 휴식을 방해할 자는 아무도 없는 셈이다.


 그렇게 한참을 바다 위에서 보내다 온몸이 붓고 허기가 질 때면 한 손으로 보드를 부여잡고 해를 등진 채 집으로 향한다. 젖은 슈트는 물로 씻어낸 뒤 대충 널어놓고 마을에 있는 조그마한 상회에 들러 라면이랑 햇반 그리고 김치 등을 사가지고 끼니를 때운 후 쓰러진다.


 평소 같으면 새벽까지도 불면증에 시달려 잠들지 못하고 하는데, 오늘은 낮에 물장구를 신나게 쳤던 까닭인지 초저녁에 바로 잠들었다. 평온한 숙면이 이다지도 달콤했던가. 오랜만에 푹잔 까닭에 몸이 개운하다. 하지만 해는 아직도 완전히 뜨지 않아 6시임에도 밖은 어두컴컴하고 짙은 안개가 하늘을 뒤덮어 주변으로부터 고립되어 버렸다.


“서핑하러 나가야 하는데...”


 혼자 집 앞에서 앉아 중얼거린다. 이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바다 안개가 머금고 있는 후덥지근한 공기는 살결처럼 친숙하다. 하긴 여기서 나고 자랐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과거 부모님과 사별하고, 이젠 더는 마음 기댈 곳 하나 없음에 고향을 찾지 않았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 정착한 곳에서 나는 항상 이방인이었고, 동떨어져 있는 존재였다. 그래서 다시금 고향을 찾았다.


 처분하려 했던 집을 그대로 남겨둔 것이 천만다행이다. 비록 나를 반기는 것은 수북이 쌓인 먼지밖에 없지만 그래도 집에서 묻어나는 정겨움과 파도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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