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액션, 드라마 / 15세 관람가 / 128분
- 2014. 07. 30 / 관객수 1700만명 기록(박스오피스 기준)
- 감독 : 김한민
- 출연 : 최민식(이순신), 류승룡(구루지마), 조진웅(와키자카), 진구(임준영)
김한민 감독, "갈등과 분열이 만연한 지금의 시대."
김한민(69년생)은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이다. 2007년,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상업영화 감독 데뷔를 하였다.
그는 영화 <명량>의 전작인 <최종병기 활>에서 표절 논란이 있었는데, 이는 영화 <아포칼립토>를 오마쥬한 수준이 아닌 완전히 그대로 갖다 옮긴 것과 다름없다는 말이 많아 표절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그래서 영화<명량>을 통해서 표절 감독이라는 오명을 벗을 것인지, 혹은 감독 밑천이 다 드러날 것인지 걸려있다. 그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 생각한다.
(<명량>은 2014년 대종상 기획상,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 청룡영화상 감독상을 받았다. 실로 엄청나다. )
끝으로 그가 <명량>을 세상에 내놓은 이유는 영화를 통해 이순신의 정신과 리더쉽에 대한 붐이 일어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는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영화를 통해 벅찬 가슴으로 힘과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 그것이 바로 <명량>이 말하는 의미이자 영화를 만든 이유다."고 말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이순신의 활약.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는 1592년(선조 25년)에서 1598년(선조 31년)까지 2차에 걸쳐 왜군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온 싸움이다. 임진년에 일어났다 하여 임진왜란이라 하고, 정유년에 또다시 쳐들어 왔다 하여 정유재란이라 한다.
왜란이 있기 전 조선은 양반들이 당파 싸움을 일삼으면서 국방을 소홀히 하였다. 당시 이이가 '십만 병설'을 주장하여 국방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으나, 배척당했다. 그처럼 조선은 국방에 안일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고, 일본은 달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국을 통일하여 지배권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국내 통일에 그치지 않고 대륙 침략을 꿈꾼다. 조선에 동맹을 맺고 명나라를 침공하자고 교섭을 시도하나 그 속셈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정말로 동맹을 원했을까.
아무튼, 조선과의 교섭이 결렬되자 곧 원정군을 편성하여 1592년 4월에 15만 대군으로 조선을 침공한다. 바로 임진왜란이다. 얼마 되지 않아 부산이 함락되고 5월 2일에 서울이 함락된다. 머지않아 6월에 평양을 빼앗겼다. 대궐은 불타고 임금은 피난을 가자 전국은 혼란이 극에 치달았다.
다만 해상 전투에서 전세가 역전되는 기미가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전라 좌수사 이순신의 등장이다. 그는 경상도 해안에서 일본의 수군을 닥치는 대로 격파했는데 1차는 옥포에서, 2차는 사천, 당포 당항포에서, 3차는 한산도 앞바다에서, 4차는 부산 해전에서 적선을 모조리 격파했다. 이 수치를 계산하니 무려 100여 척이 넘는 적선을 격파한 것으로 기록된다.
이렇게 해상에서 제해권을 빼앗긴 일본은 이동 통로와 보급로가 차단되어 오도 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각 지역에서 의병이 일어나 왜군에 항전했고, 명나라의 원정군에 도움을 받아 급한 불은 껐다고 볼 수 있겠다. 심유경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강화 회담이 진행되면서 싸움은 멎었고,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겠다 싶었지만, 회의는 결렬되고 만다.
임진왜란 6년인 1597년 14만의 왜군이 조선을 다시 침략한다. 이른바 정유재란이다. 하지만 해전에서 큰 공을 세웠던 이순신 장군은 없다. 이순신은 원균을 옹호하는 일파의 모함으로 옥에 갇혀 있었다. 그 틈을 타서 일본은 해전을 벌이니 원균은 전사하고 전선은 대파되었다.
조정은 삼도수군통제사로 이순신을 복귀시키지만, 남은 거라곤 전의를 잃은 병사와 두려움에 떠는 백성, 그리고 12척의 배뿐이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 왜군이 330척의 배를 이끌고 전남 진도 앞 명량해협으로 쳐들어온다. 누가 이길지 뻔한 싸움이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순신 장군은 거짓말처럼 한 척의 배도 잃지 않고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어 낸다.
사실 예상을 깬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모두 영화를 보기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였으니까. :)
전쟁이 치열해지는 도중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다. 이에 왜군은 그의 유언에 따라 후퇴하는데 이순신은 노량에서 도망가는 적함 200여 척을 격파하고 최후를 마쳤다.
이순신의 활약은 실로 대단했고 7년간의 왜란은 끝이 났다. 하지만 전쟁터였던 조선은 황폐해졌고,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경제적 파탄과 사회 질서는 붕괴하였으며 전란으로 인명의 손상은 말한 바 없을 것이다.
한산(1592), 명량(1597), 노량(1598) 中 명량대첩을 영화화 하다.
김한민 감독은 명량해전을 영화로 만든 이유로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 깃든 해전을 그리고 싶었다."라고 말하며 이순신 장군 3대 해전 중 명량대첩이 엑기스라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이순신 장군의 생사관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해전에 앞서 삶과 죽음에 있어서 끊임없이 고뇌하다 초열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런 이순신의 정신은 주변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거로 생각한다. 무력함에 빠져있던 장수와 병사들에게 감화를 가져다줬다. 그리고 이 영향은 승리와 이어진다.
게다가 12척의 열악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을 극복하여 맞서 싸운 명량해전은 죽음을 초월한 불굴의 정신 또한 느낄 수 있다.
김한민 감독은 이런 해전이라면 영화로 만들었을 때 관객들에게 분명 큰 감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갈등과 분열이 만연한 지금의 시대, 지금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화합과 통합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순인 장군의 정신이라 생각했다."면서 "그래서 명량해전의 재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고증의 논란?!
역사를 재구성해서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하고 그것을 하나의 영화로 만들었을 때 가장 중요시되는 부분 중 하나라 생각하는 게 고증이다. 이에 명량은 제작비 총 150억이 넘는 비용을 들였으며 고증 또한 철저히 하려 했다고 밝혔는데 피력한 것에 비하면 여전히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이에 누가 그걸 일일이 본다고, 또 역사고증을 완벽히 다 하면 영화가 무슨 재미가 있겠냐고 반박하는 말도 있다.
<명량>에서 '일자' 형태로 12척의 배를 배치, 좁은 바다 길목을 막아 왜군에 맞선 전술로 '일자진'을 보여주었으며, 판옥선이나 조총, 해전 전술인 충파, 초요기 등 많은 고증적 요소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사거리가 짧은 조총이 저격용 총으로 이용되는 장면이나, 해상에서 화살이 백발백중 다 명중되는 장면, 또 백병전 전투에 관한 논란 등이 있어 완벽한 고증은 아니었다고 반박한다.
61분의 해상 전투신?!
누구나 다 아는 역사 소재를 영화화한 것이기 때문에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명량>은 2시간 정도 되는 시간 중 절반을 명량대첩에 할애한다. 실제로 8시간 동안 벌어졌다는 해전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61분의 상영시간에 담아냈는데 자칫 잘못하면 관객이 지루함과 피로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적절한 완급 조절을 위해 여러 가지 볼거리를 더한 것이 보인다. 그중 하나로 실제로 이순신 하면 상징처럼 떠오르는 거북선은 명량대첩에서 쓰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등장시킨 것이다. 주조하던 거북선이 출정을 코앞에 두고 불타는 허구의 장면인데, 이는 이순신의 절망감과 절박함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보여준 장면으로 보인다.
또 해상전투에서 롱테이크 연출을 통해 좁은 배 위에서 얽히고설켜 피가 튀고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는 김한민 감독이 <최종병기 활>에서 보였던 그의 장기를 또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 관객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이는데 한몫 했다
영웅 이순신과 화려환 스케일, 하지만 갈리는 호불호.
3일 영화진흥위원회의 기록에 따르면 <명량>은 1949개 관에서 122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단 하루에 122만 명이라는 실로 엄청난 수치다. 이는 하루 동안 한 영화를 관람한 관객 수로는 역대 최고 기록이다.? 그리고 총 관람객 1700만 명이라는 놀라운 관객 수를 기록한 <명량>
이런 영화를 누가 감히 망작, 졸작이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갈리는 호불호는 분명하다.
히어로 물은 인기가 많다. 나 자신을 히어로에 대입해 몰입감과 즐거움을 준다. 영화 <명량>에서도 히어로가 등장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순신.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왜구의 침략을 막으며 임금에겐 충을 백성들에겐 사랑을 보인다. 게다가 부자간의 모습에선 인간적인 면모도 느껴진다. 이러니 이순신에게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연기한 최민식의 연기도 물론 한몫 했다.
게다가 해전을 바탕으로 이뤄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수중전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왜구의 배는 무려 300척 가까지 되기 때문에 규모는 자연히 크다. 190억 원이라는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었으며 그중 CG 제작비로만 43억 원이 들었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큰 비용이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판옥선이 노를 전혀 움직이지 않는 등의 어설픈 장면도 존재한다)
이처럼 많은 관객 수가 증명하는 인기와 배우 스케일 등에도 아쉬운 점이 존재한다. 화려한 해상 전투는 정확한 전술을 보여주기보다는 요란하기만 하며, 이순신을 제외한 인물을 너무나 단순화시켜 흐릿하게만 느껴진다는 점, 너무나 액션만 강조한 것이 아니냐고 불만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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