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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단편 소설, 수필 - 집돌이

by blank_in2 2020. 2. 5.


집돌이




 남들은 항상 집에만 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나 행복한데 말이다. 시끄러운 소음과 미세먼지를 비롯한 각종 해로운 환경으로 도사리고 있는 바깥에 비해 집안은 너무나도 안락하며 평화로운데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외출이란 일과 같다. 문밖으로 나서는 모든 것이 일이다. 설령 그것이 집 앞에 있는 편의점에 나가는 것일지 라도...”


 집돌이로 똘똘 무장한 나에게도 가끔씩 악마의 유혹이 들려온다.


“휴일인데 어디 안 나가?”


“황금연휴 기간에 뭐 할지 계획은 세웠어?”


“이번 주말에 모처럼 다 같이 놀러 갈까?”


 이럴 땐 필사적으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집에는 티비도 있고, 컴퓨터도 있고, 냉장고와 시원한 음식이 있고, 무엇보다 너무나도 푹신한 침대가 있다. 게다가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아늑한 욕조는 기본이다.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거나 심심하지 않냐고 묻곤 하는데 그럴 틈이 어딨는가.


 여유롭게 오락을 즐기며 마음껏 먹고 편하게 잔다. 얼마나 좋은가.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SNS나 주변 전자 매체의 광고로부터 유혹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욕하진 않는다. 자칭 집돌이라 외치는 나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어떻게 집에서만 살 수 있겠는가.


 부득이하게 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날에는 밖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가려고 노력한다. 자칫 실수했다가는 또다시 외출을 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기에 빈틈없이 계획을 세운다.


 수립된 일정표를 가지고 외출에 나선다. 먼저 대형마트를 들려서 기본적인 맥주와 라면 등 먹거리와 떨어진 생필품을 챙기고, 은행, 안경원, 서점 등 가야 할 곳 차례차례 순환한다. 그날만큼은 집돌이의 신분에서 벗어나 외출을 즐긴다. 그리고 마지막 피날레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다. 매번 집에만 있다 보면 주변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운데 이런 날을 이용해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며칠 동안은 걱정 없다. 하지만 결코 무리를 해서는 안 된다. 외출은 일주일에 한 번이면 족하다. 남은 6일은 집에서 방콕을 취해 주면서 방전돼버린 에너지를 충전시켜야 한다.


 집돌이에게 있어서 외출은 필요악과 같다. 온종일 숨만 쉬면서 휴일을 보내려고 했던 나의 계획이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외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뒹굴거릴 때의 쾌감은 이뤄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이다. 집이 곧 천국이고, 나의 육체는 집에서 한없이 가벼워져 하늘을 날아다닌다.


 이 깨달음을 알게 될 시기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 누구도 집의 행복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바깥세상의 각종 유혹에 현혹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저마다의 목표와 도전 그리고 성취에 목을 매며 전쟁을 벌이지만 꼭 싸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하 뼛속까지 집돌이인 나의 이야기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blank_in2u/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alAHgWa-5gOODj8kmZXCnA?view_as=subscri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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