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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자작시 - 휴학

by blank_in2 2019. 5. 31.



휴 학



 길가에 널브러진 돌멩이를 부러워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대신에 상처받을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감정이란 게 참으로 변덕이 심하고, 또 어찌나 얄궂은지 모른다. 아주 사소한 일에 극한으로 달아올라 예민하게 반응한 적도 있고, 총알처럼 날카롭게 파고드는 아픔에 무덤덤하게 행동하기도 했다.


 나를 둘러싼 여러 환경에 내 감정은 시시각각 변화한다. 정말이지 매우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내 감정 때문에 나를 이해하려 애썼으며 세상을 탓했다. 그 과정에서 때론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힘든 적도 있었고, 불쑥 튀어나오는 감정에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성찰이 필요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완벽하게 나를 이해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 나도 몰랐던 감정들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 모조리 사라졌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1년 만에 휴학계를 제출했다.


 성인이 되고서 나를 옥죄어 오던 제약이 전부 없어졌기에 이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근데 나는 왜 즐겁지 않은 걸까. 그저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런 미래도 그리기 싫은 무기력증에 빠져버렸다. 시간이나 날짜에 구애받지 않으며 눈이 뜨이는 시간에 잠에서 깨고 눈이 감기면 잠이 든다. 어릴 적 가장 경멸했던 나태와 도태, 그리고 지금 나의 모습.


 두 괴리 속에서 나는 흐리멍덩해졌다. 무언가 뒤죽박죽 섞인 느낌. 매 순간 부딪치고 성공을 갈망하며 온갖 도전을 해오던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내 감정을 부정하겠지.


 안락함과 편안함, 실패와 좌절 등 갖가지의 단어를 들먹이며 비난할지도 모른다. 굳이 과거의 나에게 묻지 않더라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소문이 말해주고 있다. 자세히 알지도 모르면서 섣불리 뱉어내는 그들의 말이 몹시 역겨우나, 그들을 일일이 찾아가 변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나의 감정을 이해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


 현재의 내 모습이 미래의 나에게는 또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으나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겠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게 저절로 완성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에 불과하고, 어릴 적부터 꿈꾸었던 내 인생은 오히려 어른이 되고서 꿈이 아니란 걸 알았다. 매우 주관적이나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마음 때문에 혼란스럽고 괴롭지만, 결국엔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성장하리라 믿는다.


 아직 복학할 마음은 없지만 내가 복학을 할 때는, 그때에는 인생을 좀 더 즐길 수 있을 때가 아닐까 어렴풋이 상상해 본다. 어서 내 삶과 꿈 그리고 감정의 밸런스가 딱 맞아떨어지는 때가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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