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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에세이 - 나혼자 살다

by blank_in2 2020. 8. 6.

 햄스터는 품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단독 생활을 즐기는 독립형 생물이다. 반면에 단독 생활보다는 단체 생활을 선호하는 무리형 생물 또한 존재한다. 이처럼 혼자 살아가거나 단체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생물이냐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인간은 조금 특별하다. 인간을 명확하게 어느 한쪽이라고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저 사람은 독립형, 이 사람은 무리형이라고 구분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도 꼭 구분 지어야 한다면 인간은 그저 개인의 취향에 달려 있다고 본다.


 한때 혼자라는 단어가 급격하게 부상된 적이 있었다. 혼술, 혼밥, 혼영 등 과거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해야만 할 것 같은 활동을 혼자서 하는 것이다. 그럼 이들은 독립형 인간일까? 인간의 한 단면만 보고서 그 사람의 성향을 판단할 수 있을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이 되던 해에 혼자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러한 생각을 20살 때 처음 한 것은 아니고, 예전부터 생각만 해오던 것을 성인이 되고서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백팩에다 한가득 짐을 싣고 집을 나섰다. 나 스스로 혼자가 되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이유라 할 만큼 거창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험은 잘 봤나.”

“만나는 사람은 있니.”

“지금 어디냐.”


 그저 그런 시답잖은 요소들 하나하나가 나를 밖으로 나가게 만들었다. 나는 독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광고, 팝업창처럼 끊임없이 쏟아지는 가족들의 말이 버거워지고 사소한 일상마저 부담이 되면서 혼자를 꿈꾸게 됐다.


 그렇다고 혼자 된 지금의 삶이 꿈꿨던 것처럼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막무가내로 집을 뛰쳐나가 자리를 잡은 곳은 고시원을 개조한 아주 작은 원룸 방이었고 환경은 너무나도 열악했다. 텔레비전이나 개인 세탁기는 바랄 수도 없고 소음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가해자가 조금은 이해가 갔다. 가끔 친구가 놀러 오는 날이면 접이식 매트릭스를 세워 놓아야 만 바닥에 두 명이 앉을 수 있었다.


 그래도 비로소 혼자가 됐음에 눈치 볼 일 없이 야밤에 라면과 맥주를 먹었다. 이 밤에 뭐 먹냐는 지겨운 간섭도 술을 왜 먹냐는 잔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쉬는 날은 새벽까지 만화책을 보았고 주말 아침마다 청소 해야 한다고 아침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어졌다. 늦잠이 이렇게 달콤했던가. 물질적으로는 빈약할지라도 정신적으론 풍족함을 느꼈다.


 무작정 집을 나온 것에 대해 왠지 모를 죄책감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 부모님이 나를 그냥 이런 자식이구나 하고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다. 그날 집을 나가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나섰을 때, 부모님의 심경이 어땠을지는 잘 모르겠다. 자식이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나가겠다 하니 서운했을까 아니면 대견하다고 생각했을까. 나무에서 잎이 떨어지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내가 집을 나서는 건 정해진 순리라 느낀다. 나는 혼자가 좋다. 설령 가족이라 할지라도 이건 양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중에 취직해서 나가는 게 어떻겠냐는 부모님의 제의 거절했다. 나는 편안한 환경을 포기했고, 부모님은 용돈을 끊었다. 아마 돈이 필요하면 돌아오리라 생각했나 보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때의 독립이 적절한 시기였는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준비된 때라는 건 언제 올지 모르니까 후회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나로 살아가려는 것에 행여나 부모님에게 상처가 되었을까 봐 걱정이다.

 나 자신은 하나도 바뀐 게 없는데 주변이 달라 보였다. 쌀 10kg, 20kg이 달라 보였고, 콩나물 천 원, 과일가게 수박 5천 원, 마트 수박 2만 원이 눈에 들어왔다. 또 내가 걷는 길을 중심으로 주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고 월세니, 전세니 하는 나랑은 상관없을 것만 같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이사 첫날 설레었던 지하철 속의 나는 없다. 무거운 압박감과 냉혹함만이 느껴질 뿐이다. 그래도 내가 원하는 것을 지켜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