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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사설시조 - 님이 오마 하거늘

by blank_in2 2020. 3. 24.


사설시조(작자미상) - 님이 오마 하거늘



현대어 해석



 님이 오겠다고 하여, 저녁밥을 일찍 지어 먹고, 중문을 나가서 대문으로 나가 문지방 위에 올라가 앉아, 손을 이마에 대고 오는가 가는가 건넛산을 바라보니 검고 희끗한 것이 서 있거늘 저기 님이로다.


 버선을 벗어 품에 품고 신을 벗어 손에 쥐고 곰비임비 임비곰비 천방지방 지방천방 진 데 마른 데 가리지 말고 워렁충창(급히 달린다) 건너가서 정다운 말 하려고 곁눈을 힐끗 보니 작년 칠월 사흗날 갉아 벗긴 주추리 삼대(씨껍질을 벗겨 세워 둔 삼의 줄기) 얄밉게도 날 속였다.


 마침 밤이기에 망정이지 행여 낮이었으면 남들이 웃을 뻔하였다.


 임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을 사설시조 특유의 해학성과 낙천성으로 표현했습니다. 조금 과장되고 수다스럽다 느낄 수도 있고 솔직하고 소박한 마음을 느낄 수도 있기에 판소리 사설을 연상케 하기도 합니다. 초장, 중장, 종장의 내용은 간단히 임을 기다림, 삼대를 임으로 오해, 자신의 행동에 무안(부끄러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대적 상황



 이 시조의 시대적 상황은 조선 시대 후기입니다.


시조를 보시면 알겠지만, 시가 초 · 중 · 종장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평시조와 달리 초 · 중장이 제한 없이 길며 종장도 길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조를 사설시조라 하는데요


 이는 조선 시대 후기에 널리 쓰였기에 시대적 상황을 조선 시대 후기로 볼 수 있겠죠



작자 미상의 이유



 작자 미상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1) 시조의 작자가 일반 서민인 경우


 보시다시피 사설시조는 평시조와는 달리 형식적 면에서는 제약이 없고, 또한 내용 적에서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기에 서민들이 많이 향유했을 거라고 추측됩니다.


P.S) 만약 이 시조를 서민이 적은 것인 경우에는 당연히 알 수가 없습니다.

( 현대와는 달리 조선 시대에는 후기라 하더라도 양반이 아닌 일반 서민들은 족보가 없는 경우가 많고, 만약에 돌쇠가 지었다 하더라고 그가 누군지를 알 수가 없겠죠)


2) 사대부가 지은 경우


 첫 번째 이유와 달리 사대부 같은 경우에는 이름을 적으면 당연히 누군지 알 수 있겠으나 사실 사대부들은 시조를 적을 때 자신들의 본능적 욕망을(애민, 사랑 등)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신분적 체면이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시조를 적고는 싶은데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면 안 되니 익명으로서 시조를 적는 경우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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