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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인간

2017. 11. 29 도저히 안돼

by blank_in2 2017. 12. 3.



 11월의 마지막 목요일을 앞둔 29일 수요일. 나는 아침 9시 모델하우스 회의실에 앉아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쌓여 있던 서류 더미는 조금씩 사라짐을 보였고, 어느새 밑바닥을 훤히 드러났다. 컴퓨터 3대를 놓고 묵묵히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니 어느새 엑셀의 행 번호가 3만을 넘어선 것이다.


 컴퓨터 한 대당 3만을 넘었으니 도합 십만은 된다. 하루에 적어도 천자씩 꾸준히 입력한 보람은 있다. 하지만 그만큼 지루하고 피로하기도 하다. 오늘도 어제와 그저께와 마찬가지로 컴퓨터에 서류 한 뭉텅이를 올려놓고 컴퓨터로 옮기기를 반복하니 정말 죽을 맛이다. 따뜻한 방안에 의자에 편히 앉아 일하는 거라 막노동 같은 일에 비교해서는 아주 편안하고 안락한 일이라 할 수 있겠지만 3일을 연속 아침 9시부터 밤 6시까지 컴퓨터만 바라보고 있자니 눈도 피로하고, 머리에서 열도 나고 몸도 찌뿌둥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해야 할 일을 하긴 해야지. 그런데 오늘이 수요일이니까 가만 보자 내일까지 출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오늘도 간신히 택시를 타고 출근했는데, 내일도 출근하라니, 내가 체력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과거의 나는 뭘 믿고 이런 강행군의 일정을 잡아놓은 것인지 그 속을 알 길이 없다. 그저 미련한 곰탱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돈하고 시간만 보고 할 수 있겠다 싶어 한 것이겠지, 이렇게 힘들어 죽을지는 생각못하고 말이다.


 아무튼, 오늘 출근해서 열심히 타자를 두드리며 조심스럽게 친구에게 연락해 본다. 


"석현아 미안한데 나 내일은 쉬면 안 될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4일을 연속으로 일하면 하루 일당 8만 원에 세금은 공제해야 하겠지만 약 3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벌 수 있다. 정말 큰돈이다. 4일 일하고 30만 원이라니 얼마나 유혹이 강한가. 그렇다고 또 엄청 힘든 일도 아니다. 편히 앉아서 타자기를 두드리고 가끔 힘쓰는 일 몇 번 해주는 게 전부다. 그렇다 보니 내가 유혹에 안 넘어가고 배기겠는가. 


 하지만 그동안의 술과 담배와 운동 부족으로 찌들어진 몸뚱어리는 체력을 초과했다. 이미 과부하 상태 3일 일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위로하며 인제 그만 휴식을 취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정신은 그것을 거부할 수 없다. 돈으로 아무리 강박감을 심어주어도 피로에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온 나는 돈에 무덤덤 할 뿐이다. 그저 잠을 푹 자는 것을 원한다.


 친구와의 교섭은 성공했다. 사실 교섭이 아니라 통보다. 친구가 안 된다고 하든 간에 나는 나가지 않을 것이라 일방적 통보를 보냈다. 물론 나 대신 출근할 사람을 구했으니 가능하다. 아무리 피곤하다고 하더라도 무책임하게 안 나가겠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그래도 친구가 일하는 직장인데 말이다. 그래서 어렵게 사정사정 부탁해서 대타를 보내는 것으로 협의를 보고 나는 목요일의 휴무를 따냈다.


 머릿속에서 빵빠레가 터트려졌다. 이건 가히 축하해야 할 일이다. 드디어 내일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잘 수 있고, 또 만약에 점심을 먹고 졸립다면 또 낮잠을 자면 된다. 하하하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 동생이 나랑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아서 같이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저녁 6시면 퇴근하는 직장인들과 어르신들 그리고 퇴교하는 학생들까지 버스는 엄청나게 붐비고, 또한 도로도 많이 막히기 때문에 집으로 이동하는 게 엄청난 일상 겸 스트레스인데 동생과 방향이 같은 것도 참 행운이다.


 이걸로 길다면 엄청나게 길었고 짧다면 짧은 단기 아르바이트가 끝이 났다. 앞으론 조금 생각이란 걸 하고서 일을 잡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