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맥주가 생각나는 밤이다. 좁은 통로에 마감조 크루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하나둘씩 마감을 하고 있다. 팝콘을 만드는 팝퍼기 앞에서 후와산을 뿌려대며 수세미로 광택을 만들고, 키친타월을 가지고 매대나 각종 기기의 먼지와 얼룩을 제거하기 위해 분주하다.
나 또한 그 무리에 끼여서 낑낑거리고 있다. 하지만 평소라면 힘들었을 일들이 오늘만큼은 그렇게 힘들지 않다.
사실 오늘은 마감조 크루들 끼리 회식을 하려고 했었다. 11월에 퇴사한 크루 한 명도 오기로 했었고, 평일에 아르바이트를 두 탕이나 뛰는 하송님을 배려해서도 금요일에 회식하는 게 옳았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오늘이 월급날이기 때문이다. 한 달을 살면서 가장 가난할 때가 바로 월급날 전이다. 그 전날까지를 억지로 꾸역꾸역 버티다 보면 월급날이 찾아본다.
비록 11월에는 주 3일 근무하기도 했었고, 전체적으로 보면 근무 일수가 많이 없어서 월급이 얼마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치킨 한 번 사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만 생기면 충분하다.
돈이 없어서 미뤄놨던 가스비와 전기세를 지불하고, 또 핸드폰 요금도 계산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빌렸던 돈들을 다 갚고 나니 정확히 15만 원 정도가 남더라. 이걸 가지고 또 12월 한 달을 버텨야만 하니 앞길이 막막하고 아찔하기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또 핸드폰 요금이 밀리게 되고 또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겠지만 그래도 일단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이렇게 바닥에 바닥을 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빛이 비치기를 바라볼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없다면 나는 지금 아주 우울할 테니 말이다.
막연히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런 거라면 정말로 허황한 것이고 나의 정신병일 테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그저 행운을 바라며 좋아지기를 바라는 건 잘못된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만큼의 나도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내 두 다리가 움직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매번 반복되는 유혹에 빠져서 방탕하게 지내는 게 한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월급날이니까 마감 조끼리 모여 회식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
하지만 그 회식은 물 건너 가버렸다. 이번 회식의 핵심이었던 하송님이 갑작스러운 약속으로 회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돼버렸고, 또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내일 메가박스에서 오전 7시에 교육이 생겨버린 것이다.
금요일인 오늘 마감을 아무리 빨리 마친다 하더라도 거의 1시에 가까운데, 만약에 가볍게 1차로 회식을 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3시다. 그러면 오전 7시까지 교육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집에서 씻고 자고 하면 너무나 빠듯하다.
정말이지 아쉽고 안타깝지만 마감 조의 회식을 미뤄졌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은 아니다. 정말이지 김빠지는 날이 아닐 수 없다. 맥주를 아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일을 마치고 마시는 맥주 한잔에 엄청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었는데, 어쩔 수 없이 연기해야만 하는 상황에 맥주에 김이 빠지는 나도 탄산이 빠져버려 심심한 맛이 돼버렸다.
어쩔 수 없지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그래도 집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 맥주 한 캔을 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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