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모든 것을 눈에 담겠다는 건 욕심이었다. 우리는 매번 지역을 옮겨갈 때마다 새로운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물론 세련된 유럽의 거리와는 차이가 있다. 길거리에 있는 마트의 흔한 상품에서부터
“야 이 담배 봐봐 무시무시하지 않냐”
“으.. 그거 샀어?”
친구는 게임에서 좋은 아이템이라도 얻은 것처럼, 득템 했다고 웃었다.
“응 이거 12mg이야 장난 아니지”
필리핀의 모습은 한국의 모습과 닮은 듯 하면서도 달랐다. 그들은 항상 무더운 날씨 때문에 간편한 복장을 주로 입는데 보통 청바지와 셔츠를 자주 입는다.
또, 주거지역에서는 빈부의 격차가 큰 나라라는 것이 보였다. 몇 안 되는 거리를 두고 부유계층들의 고급주택지역과 나무로 지은 판자나 벽돌집이 대비를 이룬 모습이 경계를 두고 다른 나라로 갈라진 것처럼 보였다.
“야 이것 봐 되게 신기하게 생기지 않았냐.”
“겨우 100페소밖에 안 하는데 한번 사볼까?”
섬나라이기 때문에 생선과 조개 등의 해산물 요리가 많았고 열대과일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밤에는 안전을 위해서 편의점을 간다거나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개인 활동이 제한되었다. 물론 얌전히 호텔에서 잠들 내가 아니었다.
“야.. 그래도 위험하지 않을까?”
“그럼 넌 여기 있던가. 그냥 한번 쭉 돌아보고만 올게”
“야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
“오키 오키 혹시나 선배들이 찾으면 잠깐 담배 피우로 옥상에 갔다고 말해줘”
처음에는 하루하루의 일정이 피곤해 밤 9시 이후로 외출이 없었는데, 그날은 낮잠을 자서인지 컨디션이 좋았다. 밤 11시에 호텔 밖으로 나와 불빛이 많은 곳을 찾아다녔다. 그리게 길거리를 배회하다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 옆에 한 남성이 2천 페소를 외친다.
그저 야경을 구경할 생각으로 나온 것이었는데 보고 싶지 않은 문화까지 봐버렸다.
사실 필리핀에서 있었던 모든 일정이 생각만큼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hey!!"
봉사 활동을 하기 위해 한 주택에 찾아갔을 때는 우리를 못 미더워 자기들에게 공구와 재료를 달라고 했다. 자기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꺼지라고 내쫓김도 당했다. 아주 당황스럽고 그래선 안 되지만 화도 조금 났다.
그래도 한국에선 하지 못할 경험들이었다. 어설픈 영어를 사용하며 시험이나 연습으로서가 아닌 언어로써, 말로써 그들과 소통한다는 건 색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여 모든 일정이 끝난 밤이면 팀원들과 다 같이 한방에 모여 그날의 활동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누는데
“오늘 페인트 통 실어 나르는데 너무 무거웠어.”
“나도 팔 빠지는 줄 알았다니까” 같은 힘들었던 것도 말하고
“어? 그 편지 뭐야?”
“어제 학교에 놀이터 지을 때 만난 애가 줬어”라며 자랑도 하고 좋았던 그 날을 서로 얘기했다.
고아원에서 봉사 활동 하는데 아이가 도망쳐 버리고, 벽지에 페인트를 바르는데 집주인이 오더니 노래를 부르며 같이 춤추고 벽을 칠했던 일들 그렇게 팀원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날의 피로가 다 녹아 내렸다. 아직도 가끔 필리핀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같이 놀자고”
하지만 지금은 필리핀으로 여행가기에 좋은 시기는 아닌 것 같다. 이렇게 현실을 잊을 만큼 즐거운 나에게 학과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니?”
학사경고를 받았다.
나는 7개의 과목, 즉 21학점을 신청했고, 4개의 과목에서 F를 받았고, B+하나 C+ 두 개를 받았다. 아주 처참하다. 1학기 전액 장학금을 받은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학년 학점 평균 꼴찌로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부끄럽지도, 후회하지도 않는다.
다만 후에 졸업하기 위해 빡세게 학점을 메우고, 또 재수강하고, 1학년 신입생들 속에 나 혼자 덩그러니 혼자 수업을 들을걸 생각하니 비참하긴 하다.
그리고 필리핀 여행의 여담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친구랑 술을 마시다 들어서 알게 됐는데 수상 레저를 즐길 당시 안전요원이 친구랑 대화하다 더 멀리 가보지 않겠냐고 물었고 친구는 '할 수 없다'는 의미의 'I can't'를 외쳤는데 요원이 '할 수 있다'인 'i can'으로 듣고 끌고간 것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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