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싸웠다는 부끄러움과 억울함에 도저히 얼굴을 못 들겠더라. 물론 내 자취방에 혼자 있지만 말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왜 어른답게 행동하지 못했을까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아 어서 메가박스로 아르바이트를 가야겠다고만 생각했다.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생각과 그 일을 잊어버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까지는 화장실을 가다가도, 점심을 먹다가도, 밖을 걷다가고 생각이나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는 역시나 귀찮고 성가시다. 물론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만 매일 편하게 쉬고 싶은 나를 억지로 움직이게 만들고 또 날씨는 얼마나 추운지 날마다 출퇴근하는 것조차 힘들어 죽겠다. 좀 엄살이 심한가? 하지만 싫은건 싫은거다.
평소처럼 출근 20분 전에 크루들 탈의실에 도착해서 환의를 하고, 같은 조원들끼리 시시껄렁한 얘기를 주고받다가 출근 10분 전에 근무지로 이동한다. 5분간 매니저님들에게 지시사항 등을 주고받고 미팅이 끝나면 정확히 8시 되기 5분 전인 7시 55분에 근무에 투입한다. 마감 조와 교대하는 미들 분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며 업무 시작 준비를 한다.
가끔 자기들은 퇴근한다고 놀리는 크루도 있다.
박스, 컨, 어셔 이 세 가지의 포지션별로 업무가 많이 달라지는데 마감 같은 경우에는 어셔를 제외하고는 크게 다를 건 없다. 왜냐하면 다 같이 마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지가 쌓일 만한 모든 곳을 청소하고, 닦고, 설거지하고, 재고 조사 후 창고에서 물품을 채워 넣고, 생각해 보면 내일 오픈을 위한 모든 일을 한다고 보면 되겠다. 더러워진 팝콘 기계를 청소하고, 각종 스낵류의 기계들 또한 모두 청소한다.
핫도그 기계부터 즉석구이 기계, 튀김기, 추로스 기계, 전자레인지, 음료대, 팝콘 보관함 등 모든 것을 마감이 청소한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 실 업무 시간은 다른 시간대의 근무자들에 비교해 적은 편이라 할 수 있지만 일의 강도는 그렇게 낮지 않다.
그렇게 힘들 일을 하다 보면 간절히 생각나는게 있으니 그게 바로 맥주 한잔이다. 맥주 한잔이 커져서 소주 한잔이 되고, 기분이 좋은 날에는 소맥으로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참 술을 자주 먹은 것 같다. 피부 트러블이 왜 이리 많이 생겨나는 거냐고 고민해 봤더니 술을 이렇게나 자주 먹으니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금요일에도 마셨고, 토요일에도 마셨고, 오늘도 마실 거고, 다음 주에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완전히 알콜 중독증세와 다를바 없다.
절레절레 자동으로 고개가 저어진다. 사실 나는 토요일에 마신 걸로도 충분해서 별로 술 생각은 나지 않았으나, 같은 조원들끼리 마시자고 하는데 내가 갑자기 빠져버리면 흥이 깨질 게 분명해서 조금만 마셔야지 하는 생각으로 회식에 참석했다.
말이 회식이지 그냥 보통 남자들끼리 모여서 단합을 하는 것도 다를 것 없다. 마감 조원 5명 중의 4명이 모여서 치킨집에 앉아 맥주와 치킨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그런 자리다. 거창하게 회식이라고 말할 것도 없이 정말 친구들끼리 모여 술 한잔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모여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서로 못했던 이야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풀리게 된다.
아마 오늘 술을 마시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이걸로 기억한다.
"성수기가 오면 정말 바쁘겠지"
영화관 특성상 12월 말부터 2월까지 이어지는 성수기가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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