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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인간

2017. 12. 12 여권 수령

by blank_in2 2017. 12. 16.

   여권 발급을 신청한 지 무려 일주일이 지나 수령 날이 다가왔다. 12월도 벌써 중순에 들어선 것이다. 이제 2017년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몇 주만 지나면 이젠 2018년인 것이다. 한 살을 더 먹는 건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다. 물론 끔찍했던 군대 시절에는 그저 시간이 빨리 흐리기만을 바랬지만, 지금은 차가운 사회가 나를 반기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학생일 것만 같았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을 보냈다. 장장 12년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하교를 한다. 그리고 부족한 공부를 하기 위해 독서실을 가거나 학원에서 보충 수업을 하고, 아니면 인터넷 강의를 보면서 공부하기도 했다. 

 이런 세월을 10년 넘게 지내다 보니 나는 언제까지나 학생일 것만 같았다. 어서 빨리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고, 나도 자유롭게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성인이 되고 싶었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취직을 하여 돈을 벌고, 아름다운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게 당연히 이루어 질 거라고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당연히 지금은 다르다. 내가 희망했던 모든게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알만한 나이다. 이젠 나이를 계속해서 먹는 게 두렵고, 나에 대한 족쇄가 점점 더 많아지는 느낌이다.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쓸 나이가 되었고, 이젠 나도 무언가를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늘에서 돈이 뚝 하고 떨어지지 않았고, 하루 5만 원을 벌기 위해서는 몇 시간을 힘들게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옛날 몇만 원짜리의 옷이나, 액세서리, 또는 먹을 것에 돈을 아끼지 않고 펑펑 쓰던 나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내가 정확히 몇 시간을 이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보통 2만 원인 치킨을 한번 시켜 먹기 위해서는 3시간을 일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망설임을 배운다. 이 돈을 써도 될지 충분히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여권을 수령하기 위해 신분증과 발급 증명서를 챙기고 다시 도청 종합민원실로 향해 걸었다. 집과 도청 사이의 거리는 불과 10여 분 하지만 그사이에 차가운 바람이 내 몸을 감쌌고, 나는 잠바 지퍼를 더욱 턱 끝까지 올리려 했다. 하지만 비어있는 빈틈 사이로 바람이 새어들어와 하는 수없이 주머니에 넣은 팔을 몸통에 바짝 부치며 걸었다.


 춥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손이 시뻘게져서는 나중에 신분증을 제출할 때 손의 감각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따뜻한 민원실에 들어와서 히터 바람을 쐬자 그때야 몸이 녹아 살아난 것만 같았다.


 전자서명을 마치고 빳빳한 새 여권을 받자 기분은 좋았다. 당장이라도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권 속 사진의 밝게 웃는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 밖을 나왔을 때 한 번 녹았던 몸이라 그런지 추위가 몇 배 더 강하게 느껴져서 힘들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집을 향해 걷는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다. 불안해 하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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