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다. 연우를 만난 날부터 시작해서 처음 말을 건넸던 날, 같이 영화를 보러 갔던 날, 같이 술을 마셨던 날. 행복했던 날. 하나하나 일일이 글로 옮기려 하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으니 가볍게 서두를 시작할까 한다.
20xx년 3월 xx일 입학식.
사실 입학식 날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추가합격으로 학과에 들어가게 돼서 2월 사전 엠티도 가지 못했기 때문에 친한 동기 한 명도 없다. 그래서 그날은 대학 동기 친구들과 선배들의 이름과 얼굴을 외우는데 바빴다. 그리고 간단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오후 5시부터 뒤풀이를 가졌다. 사람이 대낮부터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건 그때 알았다.
3월 말이 돼서야 대학 생활에 적응했고, 중간고사가 닥치기 전에 동기들끼리 모임을 하기로 했다. 선배들 없이 순수하게 동기끼리만 전부 모였다. 동기의 우정을 다지자는 명목이었다. 같은 반이 아닌 같은 학과끼리는 한 달 가량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어색한 기류가 남아있었다. 서로 함께 어울리지 않은 동기들끼리는 더욱 그랬다.
1학년 과대가 나서서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어색한 술자리를 깨는 데 필요한 건 공통된 관심사이고, 바로 선배들 뒷담화가 이어졌다.
“야 그 오빠 진짜 너무하지 않냐”
“그러니까 ○○언니 말로는 작년에 신입생들한테 다 집적거리고 다녔대”
“아 너희 그 소문 들어봤어?”
술기운이 무르익자 이런 얘기, 저런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방심해서 속마음에 있는 말을 쉽사리 해서는 안 된다. 동기끼리의 모임이라지만 언제나 말조심을 해야 한다. 의미 없이 실수로 했던 나의 말이 내일이면 모든 학과 사람들에게 퍼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란 곳은 소문이 너무나도 빨리 퍼져나갔고, 그것을 걷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학과는 한 학년에 겨우 3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소수라 더욱 심하다. 그리고 얼마 안 되는 인원들 사이에서도 몇몇으로 편이 갈라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야 XX 너 슬슬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냐?”
“신경 꺼”
내가 대학교에 와서 생긴 별명은 바로 신데렐라이다. 12시가 돼서 마법이 풀리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슨 소리냐고? 그냥 개소리지 뭐
집이 멀어서 버스로 통학을 했다. 그래서 11시 30분에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야 한다. 당연히 집으로 가는 막차를 놓쳐서는 안 되었고, 항상 술을 마시다가도 11시 25분 핸드폰 알람이 울리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갔다.
처음에는 좀 속상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좀 속상한 정도가 아니다. 기숙사나 학교 앞에서 자취하는 친구들이 끝까지 남아서 술을 마시는데 나 혼자 집에 가야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 쓸쓸했던 것이다. 그리고선 다음 날 아침에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데 정말 서럽다.
그게 너무 싫어서 3월 초창기, 일주일에 기본 4일은 집에 가지도 않고 술을 마셨고, 잠자리 같은 경우는 이틀은 친구네 자취방, 이틀은 친구네 기숙사에서 잤다. 그리고 유치하게도 술 때문에 중·고등학교 때의 친구와도 다툰 적이 몇 있는데 바로 술 약속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 막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여가며 적응하고 있었고, 무리에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매일 학교에 남으려고 애썼다. 참 안쓰럽다. 그런데 중·고등학교 때의 친구가 외지에서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갑작스럽게 연락이 온 것이다. 나는 대학교 선배들과 동기들과의 선약이 있었고 만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옛 친구들은 자기들보다 대학 친구가 더 중요하냐면서 화를 낸다.
“야 내가 서울에서 힘들게 내려왔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
“선약이 잡혀 있었는데 어떡하라고”
‘넌 우리가 좋냐 대학 친구가 좋냐’는 말도 안 되는 다툼을 카톡으로 몇 시간을 싸웠다. 애인도 아니고 참 부질없다. 이렇게 다투다가도 만나서 술 한잔하면 모든 게 풀렸다.
“야 XX 너는 연애 안 하냐?”
자기네 학교에서 과팅으로 만난 여자애와 사귀고 있는 친구가 말을 꺼냈다.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누군데, 설마 과CC?”
“응”
“야 과CC 잘못되면 엄청 불편해진다는데...”
“나... 고백하려고”
옛 동창들에게 술기운에 말을 하긴 했지만, 나름 준비 중이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연우에게 고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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