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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단편 소설 - 고백 (4)

by blank_in2 2017. 12. 19.

 맨 처음 연우를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다른 여자애들답지 않게 털털하고 웃음이 아주 예뻤다.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자니,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뛰었다. 그렇다. 나는 연우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입학하고 나서 날마다 동기 친구들과 선배들을 만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도 연우 생각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얼마 되지 않아서 술자리에서 연우를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아이에 대한 내 감정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연우를 좋아한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연우에게 접근하기 위해 온갖 일을 하면서 천천히 다가갔다. 걔를 향한 마음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리고 내게 콩깍지가 씌였을지 모르겠으나 연우는 다른 동기 여자애들 사이에서도 빛이 났다.

 

 단체 술자리에는 학과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기에, 연우와 같은 테이블에 앉지 못했다. 우연을 가장한 척 치밀하게 그 테이블에 착석하려고 했으나 1학년인 내 마음대로 될 리가 없다. 그렇다고 저 테이블로 옮겨가겠다고 말한다면 주위의 시선과 놀림, 그리고 부담감 같은 것들 때문에 연우를 생각해서라도 그런 행동을 할 순 없었다. 그래도 내 모든 신경은 오로지 연우만을 향했다.

 

'쟤는 나에게 관심이 있을까, 아까 쳐다본 거 같은데'

 

 나 혼자서 조급해하고 안절부절한모두가 술에 취해 얼굴에 상기되어 갈 즈음 연우가 짐을 챙겨 나가는 것을 보았다. 오늘 술자리에서 제대로 인사 한번 못 한 게 아쉬워서 무작정 그 자리를 나와 바로 쫓아가서 말했다.  취한 상태다.

 

" 연우야 "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지만 그래도 행운이다. 그제야 우리는 인사를 나누었다. 시간이 늦어서 집에 간다는 말을 듣고, 나는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답했다. 연우도 거절하지 않았다.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그때 연우와 나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때 내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렸고,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며 평소에 말도 별로 없는 내가 마치 개그맨이라도 된 듯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근데 술에 취해서인지, 아니면 너무 긴장해서인지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같이 있는 게 너무나 좋았고 좋았다.

 

 그녀의 집 앞에 서서 작별인사를 하며 그 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동그란 눈동자에 달빛에 비쳐 밝게 빛나는 입술에 청초한 피부. 너무 아름다웠다. 본능이 몸을 이끌었다. 오른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 내 손을 포개고, 한 발짝 연우에게 다가가니 그 애의 숨결이 내 입술을 닿았다. 그 애의 목을 끌어안고 얼굴을 맞대며 보드라운 뺨을 비볐다. 그리고 그녀의 고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내가 고백하려고 하기 전의 일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나는 이 스토리의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이어질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엔 반전이 있어야 재미있고, 매력적이라고 했던가. 제발 나에겐 반전이 없었으면 했지만 연우를 집에 데려다주고 그다음 날 연우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부스럭, 부스럭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이불만 뒤집어쓰고 누워있다.

 

“...”

 

 너무 당황스럽다. 나 혼자 착각에 빠진 건가. 어제의 일은 그럼 다 뭐냔 말이다. 화도 나는데 그것보다도 가슴이 쓰라렸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연우와 헤어진 날 새벽 5, 집에 잘 들어 갔느냐와 잘 자라는 문자 이후엔 전혀 연락이 없다. 나도 보내지 않았고, 연우에게서 온 것도 없.

 

 그 이후로도 우리는 몇 번인가 마주쳤다. 하지만 그날의 일에 대해선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애인이 있다는 사실이 나에겐 연우와의 벽을 만들었고, 아마 연우도 생각지 못한 스킨쉽 이후로 어색해진걸 수도 있겠다. 아무튼, 우리 사이엔 선이 그어졌다.

 

 더 이상 연우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아니 다가갈 수 없다. 남자친구가 있다는 여자에게 접근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얼마 후 연우가 남자친구랑 헤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란 인간은 단순히 기뻤다. 나를 만나기 위해 헤어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왕자병을 넘어 단순한 바보인가.

 

 하지만 해피엔딩은 역시나 없다. 연우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유가 나 때문일 거란 생각은 오로지 나만의 착각이었고, 연우가 나에게 연락하지 않을까 했지만, 전과 다를 바 없었다. 헤어진 연우를 만나 위로를 건네주면서, 나는 고백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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