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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단편 소설 - 고백(5) 完

by blank_in2 2017. 12. 19.

 중간고사가 끝나고 연우에게 고백하기로 결심한 날, 수진이에게 연락이 왔다.

 

“XX야 뭐해?”

 

 학교 앞 카페에서 잠깐 만나기로 약속하고, 별 의미 없이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수진이가 도착했고, 나는 어차피 연우에게 고백할 거 단짝 친구인 수진이에게도 미리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기도 전에 뜻밖의 말을 들었다.

 

“XX야 나 너 좋아해.”

 

 물론 카페에서 아무런 맥락도 없이 저렇게 말한 것은 아니다. 수진이의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다른 건 다 정리하고 주제만 얘기하면 저렇다는 것이다. 수진이는 내가 중간고사 시험 기간에 마음이 흐트러질까 봐, 오늘 내가 시험이 끝난다는 걸 알고 연락했다고 한다.

 

“...”

 

긴 침묵이 흘렀고, 내 표정에서 수진이는 아마 대답을 예상했으리라. 나는 미안하다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진이에게 오늘 연우에게 고백할 거라고 말하고 조언이라도 들을까 했었는데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뭐가 이래"

 

 그리고 그날 밤 연우를 만나 고백했고, 차였다. 거절한 이유는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뻔하고 흔한 사유다. 그렇게 나는 정말로 친하다고 생각했던 두 명의 친구를 잃어버렸다. 고백해서 차이고, 고백을 차고 기구한 일을 하루에 다 겪어서 어이가 없었다. 잘난 놈들이야 고백을 까고, 연애를 하는 게 쉬울진 몰라도, 나에겐 아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4월의 수수하고 싱그러웠던 꽃잎이 바닥에 떨어졌다. 화사했던 벚꽃 잎들도 바닥에 깔렸다. 꽃내음에 취해 날아다니는 나비도 벌도 보이지 않는다너무도 좋아했기에 이런 상황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는데, 막상 거절당하고 나니 슬프지도 않더라. 괜히 담담 척 했다. 무덤덤하게 지냈다. 나는 현실을 부정했다. 화창하고 아름답게만 보이던 주변 풍경들이 무의미하다.

 

야 XX아, 연우 XX 학번에 ○○형이랑 만난다던데?" 친구가 말했다.

 

“...?”

 

 소문으로 들었다. 그리고 SNS로 확인도 했다. 연우○○선배랑 사귄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그 믿지 못했고 그 다음에는 갖가지 심정이 섞여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나는 대체 너에게 뭐였는데," 수없이 화를 냈고 그 애는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끊어버렸다.

 

 억장이 무너졌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수업도 빼먹었다. 일어나 보니깐 벌써 해가 지는 늦은 오후였다. 침대에서 눈을 떴는데 모든 게 다 허망한 꿈처럼 느껴졌다. 참 공허하다. 결국, 내 곁에 아무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야"라는 뻔한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연우가 다른 사람 곁에 있는 걸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 않다. 어쩌다 마주치진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대학교에 갓 입학해서 어리숙하고 미숙했던 나는 이별이 얼마나 아픈지 배웠다풋풋하고 사랑스러운 시기라는 새내기, 그 새내기 때 나는 정말 아팠다. 나에겐 너무 가혹한 시련이었다. 수진이도 그랬을까. 


 이런 아픔을 겪는 사이에 어느덧 기말고사가 끝났다. 대학생활은 피곤하다.

 

 나는 학과에서 쓰레기가 되었다. 아직도 정확히 무슨 소문이 어떻게 퍼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동기 여자애 3명을 갖고 논 쓰레기가 됐다. 기가 찬다. 연우와 수진이 말고도 친하게 지내는 여자 동기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렇게 싸잡아 내가 3명을 데리고 놀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다.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변명하고 싶지도 않다. 내 얘기를 하는 게 그렇게 재밌을까. 그저 기분만 참 더러웠고 역겨웠다.

 

 아직 1학년 1학기가 끝났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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