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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인간

해양의무경찰 1일 - 첫 장

by blank_in2 2020. 1. 7.

 진도에서 순찰 중 드디어 일병휴가 날짜가 확정됐다. 휴가일까지는 대략 D-29로 한참이나 남았었는데 갑작스럽게 일요일로 변경되어 D-3이 되었다. 지금 내 기분이 이렇게 좋은 것은 저녁에 삼겹살을 먹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물론 갑자기 휴가를 나가는 것에 대해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이 더 크다.


"행복하다."


 큰 사건의 지원 출동을 나와 있던 터라 제대로 잠도 못 자고 <3시간 근무 3시간 취침> 생활을 반복해 너무 피곤했었는데 이렇게 휴가를 나가게 되어 다 풀리는 기분이다. 조타실에서는 직원들 사이에서 의경들 발령 얘기도 나왔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마음에 들지 않는 수경님이나 저 멀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운동을 틈틈이 하자고 마음먹었으나 오늘은 패스. 혀가 아직도 아프다. 피곤해서 생긴 것 같은데 이 작은 게 은근히 스트레스이다. 뭘 잘못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며칠이나 배 안에서 생활해서 그런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설사를 하고 있다. 휴가 소식이 없었더라면 아마 미치기 일보 직전까자 다다랐을 것이다.


 오늘 아침은 항 내에 안개가 매우 심해서 배를 떼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어젠 낯선 손님이 어찌나 많은지 통영에서 근무하는 직원분들이 무더기로 와서는 라면 - 참외 - 삼겹살 - 사과 - 다시 또 삼겹살로 1차, 2차, 3차, 4차, 5차로 얘기를 나누신다고 1시가 넘어서 잤는데 아침 출항이 없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일기를 쓰는 지금이 왠지 피곤하지 않은 것은 오늘의 휴가를 예상해서 그런가 웃음이 나온다.


 사실 이 휴가는 갑자기가 아니다. 조타실에 올라와서 근무하는 내내 이 생각만 하고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체력은 체력대로 지쳤고, 선임의 가혹행위에 정신마저 피폐해 휴식이 필요했다. 이에 말해도 될까 수십번을 고민한 끝에 부장님께 휴가 얘기를 꺼냈다. 진도까지 와서 혼자만 도망을 가버리는 게 다른 모두를 배신하는 것만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에 말하는 순간까지도 갈등했다. 다행히 점장님이 흔쾌히 허락해 주셨고 나는 거의 안될 것을 마음속으로 확신하고 '그래도 말이나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얘기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다만 복귀에 마음에 걸렸다. 집이 거제에 있어 목포(진도)에서 거제까지 가는 것은 타지역 직원분과 함께 가기로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데 돌아올 때는 혼자서 진도까지 와야 한다. 본 근무지인 창원으로 복귀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것은 차차 생각해 보자고 말씀하셨다.


16시 당직을 마치고 잠깐 쉬고 있는데 기관사님이 오셔서 "네가 빠지면 어떻게 하냐!"고 웃으며 말씀하시는 걸 듣고 정말 기뻤다. 직원에 의무경찰이 하는 건 딱히 없음에도 마치 내가 배 안에서 많은 일을 해왔다는 걸 인정해 주는 것만 같았다. 당직이나 일이 많아질 것에 조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그 선임에게는 전혀, 1도 미안하지 않다.


 21시, 지금 시각으로부터 휴가까지 계산해 보면 금(24시간), 토(24시간), 일(10시간)로 한 60시간 남은 것 같다. 정말로 기다려 왔기에 이대로 시간이 멈추진 않을까 걱정도 된다. 월말 훈련 준비에 사건으로 인한 출동, 당직 등의 스트레스와 피로 대문에 신경질적에 자도 자도 피곤하고 이유 없이 화가 나고 결국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 아닌가 싶다. 매일 조금만 참자, 조금만 참자 하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상태였는데 이제라도 살 것 같다. 이제 진짜 조금만 뒤면 휴가라는 생각에 경직되어 있던 몸이 풀리고 안정이 찾아온다.


"부디! 일요일까지 아무 일 없이... 정말 특별한 일 없이 일요일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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