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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인간

2017. 11. 05 해양의무경찰

by blank_in2 2017. 11. 6.

 나른한 오후. 엊그제 새벽 3시까지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여전히 좁은 내 자취방에 매트리스를 깔고, 친구랑 둘이 누우니 참 비좁더라. 아침 10시가 돼서야 눈을 떠서는 탄산음료로 해장을 하고 방을 치웠다.


 어질러져 있는 책상과 널브러진 부스러기들. 청소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지저분한 것을 못 참는 성격 탓에 무언가를 하려면 꼭 정리정돈을 하는 습관이 있다. 그 날도 지저분한 방을 먼저 치우지 않고는 아무것도 못 하겠다 싶어서 쌓인 설거지를 하고, 방바닥을 물티슈로 닦고 또 재활용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렸다.


 그러고 나니깐 그나마 숨통이 트이더라.


공부할까 책을 펼쳐보려 했지만 어제 마신 숙취가 쉬이 사라지지 않아 그냥 접었다. 그러다 인터넷 서핑을 하는 도중에 '해황기'를 보았다. 예전 만화책방에서 본 기억이 있어 잠깐 찾아봤는데 바다를 무대로 하는 만화책이다.


 바다…. 2년을 바다에서 살았다.


 2013년 9월 23일 아직 내 입대날을 잊지 않았다. 그날 새벽 아침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부모님과 함께 순두부가게에서 점심을 먹었고, 근처 핸드폰 대리점을 찾아 군 정지를 했던 기억이 난다. 정지는 오후 1시로 예약을 해놓았고, 그 전까지 나는 핸드폰을 부여잡고 페이스북이나 보면서 마음을 달랬다.


 진해 해군 훈련소에 도착하니 사람 참 많더라. 왠지 나와 같은 심정일 거라는 생각에 조금 위로가 되었으나,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왜 이 나이에 청춘을 여기서 보내야 하는가가 정말 이해되지도 않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23개월이나 되는 군 생활을 어떻게 하면 보낼 수 있을지 엄두나 나지 않았다. 지금이야 1년에 동원훈련이나 작계훈련 몇 번만 가면 되니까 괜찮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 군 생활을 하라고 하면 정말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무튼,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만화책을 봤더니 내 군 생활이 잠깐 떠올랐다. 요새 군대에서 안전사고를 비롯한 구타 및 폭행 등의 사고가 심각해져 피하는 사람들이 전보다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일반 육군이 아닌 대체복무를 지원하는 수가 많다.


 그 예중 대표적인 게 바로 의무경찰이다. 내 학과 후배들만 하더라도 의무경찰에 9번 지원한 후배부터 21번이나 지원한 후배도 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나도 의경을 나왔지만, 정확히는 해양의무경찰이다.


 바다의 경찰이라 보면 되는데 순찰정을 타고서 바다 위에서 근무를 한다. 짧게는 1박 2일 또는 2박 3일 동안 바다 위를 떠다니면서 해상 근무를 선다. 막 이등병일 때는 도무지 함정 근무 생활이 적응이 안 되더라. 기관실에서 들리는 광음에다가 무척이나 좁은 환경 그리고 그 환경에서 많은 인원이 같이 지내야 한다는 게 너무 답답하고, 불편했다.


 또 육지에서만 생활하던 내가 배 위에 올라가서 생활하면 몸에서 느끼는 이상이 있는데 바로 멀미다. 부두에 정박해 있을 때는 괜찮지만, 바다 한가운데 떠다니거나 앵커를 내리고 대기할 때 파도의 울렁거림이 내 뇌를 흔드는 것만 같다.


 아무튼 군대 얘기를 하라면 아마 A4용지를 빼곡히 채워서 백 장 정도를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한다. 의무경찰에 지원하게 된 계기부터 면접, 그리고 후반기 교육, 해군과 해경의 차별 대우나 또 여러 함정을 타면서 겪었던 일들, 출장소 및 파출소에서 근무했던 경험, 후임과 선임 사이에서 있었던 갈등 등 하나하나 굴곡진 경험들이 제대 후 다 잊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20대 초반을 보낸 곳이 아니던가. 바다를 참 좋아했는데, 군대에서 2년을 바다만 보며 살아서인지 아직까진 바다를 보러 가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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