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하다. 오기로 약속한 사람이 늦게 온다거나, 아니면 오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상처를 받거나 아니면 화가 나거나, 또 아니면 냉정해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지각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으나,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 제일 처음의 지각은 아마 학교에 다닐 때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유치원생이었을 때 유치원에 가기 싫어서 떼를쓰다,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늦게 간 적은 있지만, 그건 엄연히 보면 상황이 다르다.
유치원에 늦게 가면 유치원 교사들이 "○○아 왜 이렇게 늦게 왔어~"하며 살갑게 대해줄지는 모르나, 초등학교 때부터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왜 늦었는지 구체적으로 이유를 대야하고, 또한 합당한 체벌 또한 받는다. 청소한다거나, 아니면 조회시간 동안 뒤에 나가 손을 들고 있기도 했다.
친구들과의 약속에서도 지각하면 그 순간 욕 받아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아무튼, 지각은 최대한 하지 않는 게 좋은데, 그게 맘처럼 안되는 경우가 있으니 문제다.
이번 11월에 들어서서 메가박스에 지각을 무려 3번이나 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지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11월에만 3번이다. 그것 때문에 사실 좀 무안하고 부끄럽다. 내가 왜 이럴까 싶을 정도로 지각을 많이 해서 매니저님들 얼굴 보기가 껄끄럽다.
처음 한 번이야 다음부터 지각하지 않겠다고 웃으면서 호언장담을 했다지만 그게 두 번 째, 세 번 때가 되니깐 얼굴을 똑바로 못 보겠더라. 내가 왜 지각을 했냐 생각해 보니 세 번 다 내가 부주의해서 그런 일이 발생한 거라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처음 한 번은 유니폼 수선을 위해 집에 가져갔다가, 출근하는 중에 확인해 보니 유니폼을 놔두고 온 것이 아닌가.! 그것도 자전거 바구니에 말이다. 그래서 누가 훔쳐가지는 않을까 부랴부랴 자전거 정류장까지 다시 돌아가서 유니폼을 챙기고 출근했다. 다행히 아무도 훔쳐가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만약 누가 유니폼을 훔쳐갔다면 나는 지각에다가 환복도 할 수 없으니 단단히 찍혔으리라.
두 번째는 배가 아파서 지각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중학생 때부터 긴장하거나 급한 일이 생기면 아랫배가 아프곤 했다. 그날따라 왜 그랬는지는 도대체 알 수 없으나 배가 아팠고, 화장실에서 시간을 너무 허비한 나머지 지각을 면치 못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어이가 없게도 낮잠을 자다 매니저님 전화를 받고 일어났다. 오후 4시 반쯤 됐을 때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 조금만 자고 일어나서 출근할까 하는 마음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6시나 7시쯤 일어나질 거라는 바람과는 달리 8시가 넘어서 눈이 떠졌다.
참…. 막막하더라. 그렇게 많이 잘 수 있는 건지 알람을 두 개나 맞춰놓은 게 소용이 없었다. 나는 낮잠을 잔 자신을 엄청 후회했다.
나는 이제 요주의 인물이다. 언제 지각을 할지 모르는 아르바이트생이 되었고, 망가져 버린 내 이미지는 다신 되돌릴 순 없을 것이다.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선 그 배로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나름 실수를 하더라도 근면 성실한 아르바이트생이 되려고 했는데, 망한 것 같다. 젠장. 이래서 집이랑 가까운 곳에서 일했으면 했는데, 영화관 이라는 매력에 빠진 것이 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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