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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인간

타오르는 관계 속 애타는 마음

by blank_in2 2022. 1. 16.

밤길을 비추는 달

냅다 달렸습니다.
고민할 틈이 없었어요.

"내가 왜 뛰어야 하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뛰어선 안 되는 이유와 뛰기 싫은 이유, 그리고

뛸 필요가 없는 이유 따위를 들먹이며 뛰기를 멈출 것만 같았거든요.


마지막은 전 속력을 다해 질주를 하고선 타오르는 속과 씁쓸한 피 맛을 삼키며 집으로 향합니다.

 

은은하게 비추는 달빛이 마냥 좋습니다.

 

근래 달을 보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이전 직장은 오후 6시가 되면은 칼 같이 저를 내보냈기 때문에 집에서 인터넷 강의나 유튜브, 넷플릭스를 보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타지로 이직 온 여기에선 6시가 되면은 저에게 카드를 내밀어 줍니다.

"밥 먹어야지"

 

"메뉴는 어떤 게 좋을까요?"

 

그렇게 저는 오늘도 달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달이 참 예쁘네요.
그녀가 웃었던 모습도 참 예뻤었는데 말이죠.

 

저는 그녀의 손을 꼬옥 잡았고, 그녀는 저를 꽉 안아주었습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이 관계가 저를 애타게 만듭니다.

아주 오래전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선배가 주는 술을 받아 마시는데 "내가 이렇게 맛없고 쓰기만 하는 소주를 왜 마셔야 하지?"라고 생각하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물 컵에다 몰래 술을 뱉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마주친 선배의 눈빛을 아직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상사의 눈빛보다는 소주를 택한 모양입니다.

얼마 되지도 않은 이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은 벌써 가물가물해지는데 

몇 년이나 지난 신입생 때의 일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것처럼, 

엊그제 있었던 일은 아마 몇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단순하고 흔해빠진 남녀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지만요.

당분간은 이렇게 어두컴컴한 밤길에 달빛이 은은한 날이면 그녀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내색은 하지 않습니다.
한 순간 타올랐던 관계 때문에 마음이 애타더라도  
이때의 기억을 망쳐버리고 싶지 않거든요. 

 

게다가 신기하게도 애타는 마음이 하나의 원동력이 되어 저를 뛰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웃기게도 말이죠.


1월 급격히 추워진 날씨 때문에,

타오르는 마음이 한순간에 식어버리지 않게 내일도 달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