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에 몸을 떨며 눈을 떴다. 바닥에 이불을 깔지 않은 채 렌즈를 빼고, 양말만 벗어둔 채 씻기는커녕 그대로 바닥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원인을 찾는다면 너무 뻔하다. 술 때문이다. 정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피곤했던 날인데, 거절하지 못한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다행히 1차로 끝내 과음하지 않은 게 망정이지 더 마셨다면 정말 인사불성이 되어 망신을 당했을 것이다.
그래도 몸이 너무 피곤했던 탓이었는지, 아니면 술 마시면 항상 같이 피우던 담배가 많았던 것인지 눈을 떴을 때 머리가 아프더라. 눈만 감으면 잘 것만 같았는데, 알코올이 들어가니 그래도 꽤 많이 마신 모양이다. 술의 힘이란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숙취 또한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렇게 새벽에 깨어나서 다시 양치질하고, 부랴부랴 이부자리를 깔고 다시금 누웠다. 샤워나 세수는 미룬다. 너무나 피곤하기 때문에 당장 생리적인 현상을 제외하고는 숙면을 방해할 수 없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핸드폰 한번 만질 법도 한데 깨질 것만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잠을 청하기 바빴다.
오후나 돼서나 눈이 떠졌고, 숙취는 채 다 가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어나야 했다. 계속 누워만 있겠다고 이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기에 당연히 해장을 위해 일어난 것이다. 된장찌개와 짬뽕을 고민하다가 짬뽕을 시켰다. 아침부터 하는 곳은 드물어 너무 일찍 일어나면 라면으로 해장할 수밖에 없는데, 다행히 눈떠보니 11시라 중국집이 마침 문을 열어 문제없이 짬뽕을 주문했다.
밥을 먹고 뭐할까 생각했는데, 뭘 하지 않아도 됐다.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약속도, 아르바이트도, 그 무엇도 없기 때문이다. 다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기뻤다. 이런 휴식이 얼마 만인가. 정말이지 행복감에 취할 것만 같았다. 30분 만에 도착한 짬뽕이 이런 행복함을 곱절로 만들어 주었다. 밥을 먹으면서 곰곰이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 더 좋을 수 있겠느냔 생각에 이것저것을 고민하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정답에 이르렀다.
답은 바로 빈둥대면서 쉬기이다.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스타크래프트도 조금 해주고, 만화책도 좀 보다가 밀린 웹툰도 하나하나 챙겨봐 주고 그러다가 밥때가 되면 맛있는 거 사다가 재미있는 예능이나 유튜브 영상과 함께 먹어주면 끝. 아무런 시간적 제약 없이 하루를 잉여처럼 보내는 것이다.
(사실 이러면 안 된다는 거 알고 있지만 하루 정도는 괜찮다)
얼굴을 만져보니 그간 피곤했던 걸 증명하듯이 뾰루지가 하나하나 올라와 있고, 다크서클이 이~만큼이나 내려와 있긴 한데, 목요일까지 푹 쉰다면 다 사라질 것이다. 스트레스 받을 일도 마땅히 없고 말이다. 아직 남아 있는 숙취가 조금 짜증 나긴 하지만 곧 사라질 것이고, 울리지 않는 핸드폰에서 해방과 안정감을 만끽한다.
에픽하이의 신곡 앨범을 하나하나 들어보고, 새로 나온 뮤비감상도 하고,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무시한 채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 너무 행복하다. 아니 행복해야 한다. 이번 일주일은 너무 힘들었으니까 혹사당했던 육체와 정신에 이 정도는 당연히 보상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내일과 목요일은 너무 빈둥대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해야 할 일들이 아직 가득하기에 손을 놓고 놀고만 있을 때는 아니다. 그러니 오늘을 더욱 소중히 하고 행복해야 한다. 내일부터는 다시 그럴 수 없으니까 말이다.
아아... 빨리 내가 해야 할 것을 모두 끝내고, 다짐했던 목표를 성취하고,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는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글 > 인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 11. 16 수능, 지진의 여파 (0) | 2017.11.18 |
---|---|
2017. 11. 15 프로그램 삭제 (0) | 2017.11.15 |
2017. 11. 13 피곤함의 끝 (0) | 2017.11.15 |
2017. 11. 12 VR 체험기 (0) | 2017.11.15 |
2017. 11. 11 빼빼로데이에 교육이라니 (0) | 2017.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