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오후. 냉기와 강풍이 가득한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런 날에는 창문 틈새를 최대한 막아서 방안의 온도를 유지하고, 무릎 담요를 덮고, 깔깔이 용으로 입는 과잠을 입으면 집돌이룩 완성이다. 나는 일요일 오후를 즐기는 집돌이가 되기로 한 것이다. 몸을 따시게 만들고 의자에 편안히 기대어 책상에 발을 올린채 책을 보며 한껏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오후 6시가 조금 지났을 때, 친구가 잠깐 들리겠다고 연락이 왔다. 안 그래도 그 친구에게 영화 관람권 4장으로 주기로 했던 터라 알겠다고 했다. 사실 10월에 친구에게 2장을 주기로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다 쓰고 없어진 터라 미안해서 11월에 4장을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6시에 연락이 왔던 친구가 8시가 되도록 연락이 없는 것이 아닌가."오늘안에 오기는 할까", "도대체 뭐 하느라 이렇게 늦는 걸까" 생각하면서 괜히 연락하기는 귀찮고, 알아서 잘 오겠지 싶어 따로 연락하진 않았다.
이렇게나 추운 날 밖을 싸돌아 다니려고 하다니 고개를 저으며 커플인 게 부럽긴 하지만 애써 부정했다. 따뜻한 집 안에 있는 게 최고라고 위로하며 말이다. 그러다 8시 반쯤 돼서야 친구가 도착했다. 1층에서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고, 친구만 2층으로 올라왔다. 멀끔하게 꾸며 입고 온 모습을 보니 역시 데이트가 맞긴 하나보다.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물어보니 반지를 보고 왔단다. 커플링을 맞췄는데 잃어버렸다나 뭐라나.
(하아. 아직 커플로 뭔가를 한 번도 맞춰본 적이 없는 나이기에 그만 울컥)
괜히 말만 더 해봤자 솔로인 나의 가슴만 후벼 파질 것 같아서 얼른 보냈다. 데이트나 잘 하라고. 그렇게 영화 관람권 4장을 쥐여주고 친구를 보냈고, 평화로운 오후가 그냥 오후가 됐다. 정말 나만 빼고 다 연애하는 친구들. 갑자기 공부할 의욕을 잃고 그냥 멍하니 있는데, 그 친구가 다시 집에 찾아왔다. 분명 저녁을 먹었다고 했건만 그래도 먹으라며 밑에서 순대 1인분과 오뎅 국물을 포장해 온 것이다. 그냥 음료수나 한 캔 사 올 것이지 솔로는 그냥 뒤룩뒤룩 살이나 찌라는 말이냐, 또 핫팩도 3개나 주고는 데이트하로갔다.
술 한 잔 생각나는 밤이다. 배는 불렀지만 그래도 순대는 식으면 맛이 없기 때문에 바로 먹었고, 남은 것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라면 끓였을 때 같이 넣어서 먹으면 그나마 맛이 있다. 한 캔 남은 맥주를 꺼내 마시면서 TV 예능을 보다 10시 조금 넘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정말 너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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