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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인간

2017. 11. 21 속임수, 흐름

by blank_in2 2017. 11. 24.

 평소와 다를 것 없던 평일. 계획에 맞춰 글을 쓰고 있던 때였다. 오후 3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고, 나는 그것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 친구는 다짜고짜 오늘 아르바이트가는지 물어보고는 쉬는 날이라는 대답에 바로 술 약속을 잡았다. 시간은 오후 7시경.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21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때의 나의 선택이 너무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사실 약속이 한번 파기되었다. 이번 주 일요일에 공주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시험을 치고 내려오기로 했었기 때문에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될 약속이라, 만나지 말자고 했다가 내가 만나자고 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는데, 처음부터 하나하나 집고 넘어가 보자.


 석현이의 전화가 먼저다. 오후 3시에 전화가 와서는 나보고 기대를 하라고 했다. 도대체 뭘 기대하라는 걸까. 그리고 창원이 아닌 마산에서 만나자고 해서, 도저히 상상이 안 갔다. 최근 내가 여자에게 많이 치인 것도 있고 해서 설마 그런 쪽인가 싶기도 했는데 일단 알겠다고만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원태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금 석현이에게 들었다고, 오늘 셋이서 술 마시는데 어디서 마실껀지 물어보는게 아닌가. 아마 원태와 석현이가 입을 맞추지 않아 걸린 것이다. 이렇게 석현이의 거짓말은 금방 들통이 났다. 요즘 할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고 제일 큰 문제로 금전적으로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집 밖으로 잘 안 나가는 것을 알고서 이런 거짓말을 한 것이다.


 남자 셋이 모여서 술을 마시자고 하면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이런 말을 했다 한다. 처음엔 기대감이 사라져 1초 정도 화가 났다가 그냥 그랬다. 나 지금 술 마실 상황이 아니라고, 다음에 마시자고 넘어갔는데! 그때 그렇게 끝까지 넘어갔어야 했다.


 계속해서 글을 쓰려고 했는데, 한 번 흐름이 깨지고 나니 마음을 다잡기가 여전 쉬운 게 아니다. 갑자기 공부가 재미가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그냥 다 포기하고 나가서 놀고 싶어지는 게 아닌가. 정말 미친 거다. 


 그래서 결국 나갔다. 친하지 않은 사이였으면 큰 고민을 하지 않았을터인데, 그 둘은 몇년 지기 친구이다. 우리 셋이 같은 중학교 동창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같이 군 생활을 보냈던 애들인 게 컸다. 나 석현, 원태 세 명 다 기존의 군 복무 대신 해양의무경찰로 대체복무를 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기도 하고, 그 인원수는 육군보다 아주 극소수이기 때문에 같은 공감대를 찾기 어려운 군시절을 우리 세명이 가지고 있다.


 8시쯤 만나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를 살짝 걸치며 군시절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10시쯤 본격적으로 술집에서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술을 많이 마셔서 취한 탓일까. 거리의 여자들이 다 예뻐 보이니 말이다. 정말 큰 일이다. 그렇게 11시까지만 딱 마시고 서로 각자의 집을 향해서 헤어지기로 했는데, 역시나 시간을 계속해서 흘러 11시 반이 넘었고, 버스는 끊겨서 내 자취방에서 원태를 재웠다. 


 원래 세웠던 계획하고는 한참이나 빗나가 버렸고, 그 다음 날도 숙취와 피로가 극에 달해서 죽을 맛이라 체력회복에 며칠을 보내고 말았다. 지금도 사실 피로가 쌓여 힘들기도 하나, 내 주위에 정말로 멋지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보면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 이불속에 누워있기 두려워 눕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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