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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인간

경수필 - 철없던 시절, 학사경고 (2)

by blank_in2 2017. 12. 7.

20xx년 5월 xx일


 오전 10시 반 늦은 아침, 사실 아침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하고, 그렇다고 점심이라고 하기엔 이른 시간 나는 눈을 떴다. 


'끄응...'


 똑바로 눈을 뜨기가 힘들다. 꽤 오랜 시간을 잔 것 같은데, 머리속은 아직까지 어지럽고 속은 울렁거린다. 지금 이 기분을 그대로 표현하라면 마치 바닷속에 서 있는 것만 같다. 이리저리 파도에 휩쓸려 중심을 잡기가 어렵다. 그뿐만이 아니라 코끼리 코를 몇 바퀴 돈 것마냥 주변이 빙빙 돌아간다.


 분명히 난 침대에 가만히 앉아있는데 말이다.

 

 누구나 한번은 겪어보는 숙취, 어저께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취해서 기억도 끊기고, 처음으로 토도 하고,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너무 어지러워서 잠조차 잘 수가 없. 정말로 몸에 힘이 안 들어가고 머리가 아파서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을 술 덕분에 알게 된다. 

 

“네 아빠한테도 타준 적 없는 꿀물을 아들한테 다 타주네

 

 출근하시기 전 어머니가 한소리 하셨다. 우리 가족은 대체로 술을 즐기는 사람이 없다. 아버지나 형은 술을 거의 안 하고, 어머니는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좀 이례적인 경우였다.

 

할아버지 닮았나 보네

 

 옆에서 아빠가 한마디 건넨다. 하지만 나는 이에 대꾸할 기운조차 없어 꿀물을 한 번에 들이키고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누워있어도 여전히 괴롭지만 그래도 최대한 버티려 노력하며 눈을 감아 잠을 청한다.

 

할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셨던가...’

 

아 어지러워...’

 

 어저께 같이 술을 마셨던 친구들 단톡방에는 지금 수백 개의 글이 올라와 있다. 차마 볼 용기가 없다. 또 무슨 흑역사를 남겼으리라. 쟤들은 속도 좋지. 나는 지금 어지러워 죽을 맛인데 핸드폰을 보는 것도 힘들다.

 

 이대로 아침 수업은 당연히 불참. 숙취가 없었다고 해도 참석했을지는 의문이지만 오늘은 학교는커녕 집앞 편의점 조차 갈 자신이 없다.

 

술병이 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정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다가 잠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늦은 오후쯤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간신히 체력을 회복했다. 그제야 비로소 핸드폰을 봐도 속이 울렁거리지 않았다. 하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한쪽으로 몸이 치우쳐서 똑바로 걸을 단계는 못됐다.

 

야 너 오늘도 학교 안 나오냐?”

 

민교야 무슨 일 있어?”

 

마 이거보면 연락해라

 

“...”

 

 핸드폰엔 카톡 메세지가 몇 개 와있다. 수업에 빠진 나를 걱정해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오늘 숙취로 수업에 빠진 것을 포함해서 이번 5월에 학과 수업에 빠진 건 저번 주 부터니 꽤 오래됐다. 집에서 눈치를 주는 건 있었지만 밖에서 눈치 볼일은 전혀 없다. 초, 중, 고등학교와 달리 대학교 수업을 결석했다고 조교 선생님이나교수님이나아니면 학회장이 나에게 연락을 할 일이 있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나를 나무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

 

'정말 당연하다. 그 결석으로 인한 손해와 피해는 순전히 나한테 돌아올 테니까.'

 

아무튼, 학교수업에 가지 않았다. 난 임의 자체 휴학을 했다. 앞전의 사건들과 소문이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다른 일도 어느 정도 영향은 받았고, 사실 그런 것보다 앞과 뒤가 다른 대학교 친구 선후배들이 너무나 싫어진 것이 가장 컸다. 정말 사람이 싫어진 것이다.

 

 이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형식적으로 하는 건지 의심이 들었고, 또 내 앞에서 그렇게 웃다가 뒤에선 나를 욕하진 않을까 의구심이 생겼다. 이런 걱정을 중, 고등학생 때 안해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때는 사람이 싫진 않았다.

 

‘함께 웃으며 술 한잔 할 때는 평생을 함께할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친구는 몇이나 될까...

 

이때 나는 대학 생활에 점점 회의감이 느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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