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tvN, 2017) 아까운 시간 갉아먹지 말고 글써. 나처럼 미친듯이

by blank_in2 2017. 12. 15.


  •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 15세 관람가 / 16부작
  • 2017. 04. 07 ~ 2017. 06. 03
  • 연출 : 김철규
  • 극본 : 진수완
  • 출연 : 유아인(한세주), 조우진(갈지석), 임수정(전 설), 고경표(유진오), 곽시양(백태민)

톰프슨 기관단총?!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한 시카고 타자기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톰프슨 기관단총의 별명이다. 이는 1920년대 당시 경찰, 갱스터, 마피아 등에게 애용되었던 총기로 그 소리가 타자기를 치는 소리와 닮았다고 하여 시민들에게 붙여진 별칭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드라마에서도 등장한다. 전생에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는 류수현과 서휘영이 대화하는 도중에 시카고 타자기의 유래가 짤막하게 등장한다.


 가벼운 마음과 재미를 위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에게 드라마가 내포하는 의미가 그리 중요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교훈까지는 아니다 하더라도 드라마가 주는 의도 정도는 알고 있으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각종 SNS가 활발해지고, 차가운 도시 남녀, 가벼운 만남, 쿨한 연애 등이 주를 이루는 현세에 치열한 삶을 살았던 1930년대의 일본강점기의 청춘을 보여준다. 장난이 아닌 목숨을 걸고 사랑을 하고, 우정을 지켰던 그 세대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뜨거운 무언가를 느끼게 해준다. 올드한 감정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유치하면서도 애틋한 순애보, 우정은 마냥 우슨은 것이 아니다. 절망적이었던 국권 피탈의 일제시대, 좌절과 원망에 빠져있지 않고 다시 일어나 대의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해준다.


변화하는 시대, 역사와 작가를 다루다.



 "유명 작가들의 삶은 어떠할까?"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집필 활동은 어떤 걸까"


 대기업을 소재로 한 드라마도 많지만, 요즘은 각종 신선한 소재로 만들어진 드라마가 많다. 환상적 존재인 도깨비를 다룬 드라마나, 웹툰이나 소설을 드라마로 옮긴 것도 있고, 요즘 화제가 되는 공무원과 학원 강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 또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등 시청자들에게 관심이 있을 법한 소재를 다룬 드라마가 많다. 매번 뻔하고 진부한 스토리에 출연 배우만 달리하여 제작한다면 누가 드라마를 보겠는가. 


 시카고 타자기는 중심 소재로 작가를 선택했다. 물론 거기에 얽히고설킨 사연들과 판타지적인 요소, 그리고 시대극을 첨가했다. 스타 작가와 그의 팬, 그리고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전생의 연으로 이어져 사건의 실마리를 조금씩 풀어나간다. 한 편의 소설이 완성할 때쯤 아마 드라마는 종극에 다다르게 된다.


 다시 보기로 보시는 분들은 모르겠지만 방영 당시에 황금연휴와 대선 토론이 겹치는 바람에 결방이 자주 있었다. 그래서 풀리지 않는 실마리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에게 어느 날 낡은 타자기 한 대가 배달된다. 그날 이후부터 1930년대의 환영이 보이게 되고, 급기야 나중에는 유령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짜증 나는 팬까지. 모든 게 완벽하던 한세주는 절필 선언까지 시달리고 괴로워한다. 이런 한세주가 슬럼프와 트라우마를 딛고 전생을 기억해내며 로맨스까지 보이는 드라마다.


"카르페 디엠"


인물 소개, 13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한 임수정 등



 요즘 과감한 발언으로 화제가 되는 유아인. 그 개인에 관한 얘기는 여기서 다룰 이유가 없다. 나는 한세주와 서휘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단편소설 '운명'으로 등단하여 지금은 장르 소설을 쓰고 있다. 문단의 아이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그를 좋아하는 팬들도 엄청나다. 하지만 과거의 아픔을 가지고 있으며 타자기를 집에 들이고 난 이후부터는 엄청난 일을 겪게 된다.


 또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거의 명대사 수준이다.


"조국은 빼앗겼지만, 나에게서 문장을 뺐을 순 없어 글을 쓸 수 없다면 난 유령이나 다름없으니까. 해방된 조선에서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미친 듯이 쓸 거야"나


"공포라는 건 말이야 자신에 대한 불신과 미지에 대한 불안에서 와. 공포와 불안에 먹히지 않으려면 자신을 믿는 수밖에 없어. 자 믿고 과녁에만 집중해!" 등이 있다. 그리고 여담으로 말하는데 한세주의 양아버지로 나오는 천호진은 이로써 유아인과 4번째 합을 맞추었다.


 그리고 반가운 얼굴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임수정이다. 드라마에서 임수정 씨를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예전 학교라는 드라마에서 얼핏 봤던 기억이 있다. 그녀는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후 13년 만에 드라마를 복귀한 것이다.


 극 중에 등장하는 전설은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며 생계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인물로만 보였는데 알고 보니 국가대표 사격 선수이기도 했고, 수의사이기도 했다. 정말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게다가 같이 사는 집안 식구들도 보통 사람은 아니다. 정말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 설정이다.


 그 밖에도 타자기 속에 영혼이 봉인된 유진오나 세주의 원고를 훔쳐다 써서 신춘문예에 당선된 백태민, 그리고 유머스러운 조우진 출판사 사장 등이 몰입감과 재미를 더해준다.





인용 책과 명대사들



 시카고 타자기가 작가를 다룬 작품이니만큼 책이 많이 등장한다. 또한, 심금을 울리는 명대사도 많다. 우선 초반에 한세주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사가 있다.


"글이 막힐 땐 어떻게 하냐고요? 글 막힘은 투덜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기 위해 꾸며낸 변명이 아닐까요?"


 이런 말만 보더라도 그의 성격이 어떨지는 충분히 짐작하고 남는다. 하지만 저 대사는 정확히 한세주가 한 말이 아니다. 이는 영화배우이자 각본가인 스티브 마틴이 한 말이다.


 이 외에도 시카고 타자기에는 많은 인용구가 등장한다.


"뮤즈들은 유령이라서 때론 초대받지 않은 곳에 나타나곤 한다" - 스티븐 킹


"제대로 쓰려 말고, 무조건 써라" - 제임스 서버


"나는 방금 한 권의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꽂아 놓았다. 나는 이미 조금 전의 내가 아니다" - 앙드레 지드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는 바로 이것이다


"아무도 모방하지 않는 작가가 아니라,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작가" - 프랑수아르네 드 샤토브리앙


 정말 멋지지 않은가? 물론 이런 인용구들 말고도 한세주와 전설이 대화를 나누던 장면에서 반할 것만 같은 장면들이 몇 있다.


 전설이 한세주에게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건네준 장면에서 전설이 형광펜으로 표시한 구절을 한세주가 하나하나 읽는 것도 감동이었고, 또 13화 중에 거사를 앞두고 외치는 유진호의 한 마디 마디가 가슴을 울렸다.


"그대들이 식민지 조선에서 느낀 고통과 겪은 울분은 이 나라의 현실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오.

 

그대들이 흘린 피와 눈물은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오.

 

그대들을 끝까지 행동하게 하는 힘은 이 나라 이 땅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나의부모, 형제 나의아이들 소중한 벗과 연인, 그리고 동지들 그들이 앞으로도 쭉 함께 살아갈 이 땅에 대한 사랑과 연민입니다.

 

 분노와 투지는 빨리 불타오르나 현실의 벽에 부딪쳐 꺾이기 쉽고이상과 열정은 숭고하나 퇴색하기 쉽습니다그러나 나의 소중한 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배곯지 않고 마음껏 웃고 뛰놀 수 있도록 핍박과 차별 없는 세상에서 원하는 일 할 수 있도록 조총맹’ 동지들이여 끝까지 가봅시다.

 

우리함께 해방된 그날을 맞이합시다"


신선한 소재와 가슴을 울리는 드라마.



 시청률은 별로 높지 않았다. 하지만 시청률이 모든 것을 다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아주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나 한 번쯤 재밌게 볼만한 드라마라 생각한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회상씬과 느린 전개는 좀 별로였긴 했지만 그래도 현재와 과거가 이어지는 개연성이나 작가를 다룬 점이 좋았다. 또 최종화에서 서휘영과 신율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볼 때면 가슴이 먹먹해졌다. 백태민겸 허영민이었던 곽시양의 연기에 진심으로 짜증을 느끼기도 했다. 이 처럼 캐릭터들의 매력이 돋보인다.


 나는 1930년대 일제 치하 시대의 치열함도 보았고, 슬럼프에 빠졌다가 다시 일어난 것도 보았고, 달달한 연애와 뜨거운 우정도 봤다. 정말 만족할 만한 드라마이다.